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이로쿠의 변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미요시 가문의 새로운 당주 [[미요시 나가요시]]는 [[호소카와 하루모토]]의 가신으로 활동했으나, 끝내는 아버지의 원수이기도 하였던 하루모토에게 반발하여 하루모토의 정적이던 호소카와 우지츠나와 연합, 하루모토를 패배시키고 [[긴키|키나이]]를 차지하였다. 하루모토와 손을 잡고 있었던 쇼군 요시테루는 이에 타격을 입고 오우미로 물러났고, 그에게서 이반한 만도코로[* 무로마치 막부의 다이묘간의 영지 분쟁 등을 해결하던 재판소] 수장 이세 사다타카는 나가요시와 손잡고 쿄토의 정국을 운영하기 시작, 이로 인하여 교토의 질서를 유지하는 "협의의 막부"는 쇼군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. 쇼군 [[아시카가 요시테루]]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나가요시와 전쟁을 하며 분전, 결국 1558년에 나가요시와의 화친을 이끌어 냈다. 이로써 요시테루는 교토로 복귀하여 "협의의 막부"를 부활시키게 되었다. 그는 미요시 나가요시와 그 후계자인 [[미요시 요시오키]], 일족 [[미요시 짓큐]]와 중신 [[마츠나가 히사히데]]에게 막부 역직을 부여하여 막부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을 통하여 중앙에서 막부를 지탱하는 다이묘가 거의 남지 않은 상황을 타개하려 하였다. 이는 막부가 나가요시에게 상당한 권위를 부여해준 것 역시 되어, 양자는 상호보완적인 상태가 되었다. 막부와 연합한 이후 순조롭게 영토 확장을 실시하던 나가요시였으나 미요시 정권의 혈족이자 공신들이 차례 차례 요절하였고 본인도 병에 걸려 1564년 7월에 43세라는 나이로 사망하게 되었다. 후계는 [[소고 카즈마사]]의 장남인 [[미요시 요시츠구]]가 이었으며 [[미요시 산닌슈]]의 필두 [[미요시 나가야스]]와 [[야마토]]의 군단장 [[마츠나가 히사히데]]가 보좌하는 형태로 미요시 가문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.[* 전 후계자였던 요시오키도 보좌역의 나가야스, 동료인 히사히데와 함께 일을 수행해 나갔다. 이 두명이 미요시 가문의 최고 가신임을 넌지시 추측할 수 있는 부분.] 그러나 미요시 정권의 지탱점이었던 미요시 일문들의 사망은 정권의 쇠퇴가 진행되는 것과 다름없었다. 한편 쇼군 요시테루는 그 동안 여러 다이묘들의 대립에 중재를 나서고 그들과 친목을 다지며 다이묘들에게 쇼군의 존재를 부각시켜왔다. [[우에스기 겐신]] 등의 다이묘들은 직접 쇼군을 만나러 오기도 했고, [[오토모 소린]]은 총을 보내왔다. 이러면서 쇼군의 입지를 굳히던 중 미요시 가문이 쇠퇴하자 요시테루는 미요시 가를 이용하여 쇼군의 권위를 해치며 막부 재판을 불투명하게 운영해온 만도코로 수장 이세 사다타카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측근 셋츠 하루카도를 임명하여 막부 재판을 장악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